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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5일 화요일

What do I know? What is it that I know? What can it do that I know?

2016년 8월 9일 화요일

주희(朱熹)의 성즉리(性卽理)와 왕양명(王陽明)의 심즉리(心卽理)에 대한 비판적 분석




 왕양명(王陽明, 1472년 ~ 1528년)
주희와 왕양명은 각각 12세기와 15세기에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세계가 구성되는 원리에 대해서 궁금증을 던지고 그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려 했던 신유학자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이치인 이(理)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졌으며 그들의 사상은 각각 성즉리(性卽理)와 심즉리(心卽理)로 구분된다. 주희는 이 세상의 태초의 원리인 태극의 개념을 가정하였는데, 태극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을 존재하도록 만드는 사유의 원리이며 그것들의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주희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싶어 했는데, 인간이 가지는 본래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지고한 원리인 태극으로부터 동일하게 분유한 이(理)를 간직하는 외부 대상인 사물[物]을 이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희는 안으로 향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탐구하는 함양의 공부와 바깥을 향하여 외부의 사물을 공부하는 격물치지의 공부를 병행하여 이(理)를 이해하고자 했다.
왕양명은 이러한 주희의 공부 방법에 회의를 가졌다. 맹자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자처한 왕양명은 인간의 본성을 개인의 마음 안에서 찾아야지 외부의 대상에서는 이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온 세상은 마음 안에 존재함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바깥의 사물에 나아가서 이(理)를 배운다는 주희의 격물치지는 마음과 이치를 둘로 나누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었다. 이(理)를 갈구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견해차이로부터 왕양명은 주희의 관점을 비판하고 대신에 자신의 심즉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왕양명은 이(理)를 깨우치는 유일한 방법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수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왕양명의 제자들은 네 가지 교훈으로 구성되는 그러한 방법을 사구교(四句敎)라고 불렀다. 사구교에 따르면 최초 인간의 마음[心]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단지 환히 열려있는 마음이다. 비어있는 상태였던 이 마음에 어떤 사물이 맺혔을 때 비로소 선도 있고 악도 있는 의(意)가 발생하며,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인 양지(良知)에 의해서 악한 행동을 배제하고 선한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 왕양명의 사유에서 중요한 핵심을 차지하는 이러한 일련의 마음 속 과정인 사구교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실현함으로써 심즉리가 완성된다.

군신, 부자, 현제, 부부, 붕우 관계는 모두 사람들이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격물하고 궁리해야만 한다. - 주희

 
심즉리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으면 세상의 이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개인의 실천적인 측면에서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예외적 상황에 대해서는 단지 우연적인 속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인 양지가 우리 모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사실에 대해서, 심즉리는 단지 그들의 본성이 잠시 가려졌기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가려진 본성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 역시 어렵다.
왕수인의 사구교가 갖는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점은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動力)과 관련한 문제이다. 고요한 상태의 마음이 어떤 구체적인 사물로 향하면서 의(意)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의(意)가 반드시 어떤 사물에 대한 의(意)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때 우리의 마음이 구체적인 사물로 향하는 기본적인 경향성을 가진다는 가정은 사구교 이론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왕수인이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 모습이고,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이 의(意)의 움직임이다.” 라고 말했는데, 마음이 어떤 대상을 지향한다는 단순한 가정은 의(意)에 선도 있고 악도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意)는 땅에 떨어진 지갑을 향할 수도 있고 부모님의 어깨를 주무르려는 행동을 지향할 수도 있는데, 이 때 두 행동을 향한 마음의 경향성이 두 행동이 선하거나 악한 행동이라는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선과 악을 알고 그 중에서 선이라고 판단한 행동을 실천하는 능력인 양지가 있더라도, 그 행동에 대한 의(意)가 발생할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양지의 기능을 단지 ‘일회성 실천’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

주희(朱熹, 1130 ~ 1200)

반면에 주희의 성즉리는 이와 같은 한계, 마음이 사물에 향하는 경향성의 문제를 갖지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이 단일한 원리인 태극에서 이(理)를 분유 받으며, 이 때의 이(理)는 곧 관계 맺을 가능성이다. 따라서 관계 맺을 가능성을 지니는 인간의 마음이 마찬가지로 관계 맺을 가능성을 지니는 상대방 사물에 다가간다고 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희는 이를 “이 세계는 ‘만물들을 낳는 것’을 마음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물들은 각각 이 ‘세계의 마음’을 얻어서 그것을 마음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세계의 마음’은 만물들 속에 존재하는 이(理), 곧 태극이고, 그것은 ‘만물들을 낳는 것’이므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방향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방향성이 왕수인의 사구교에서 설명할 수 없었던 ‘마음의 사물을 향하는 경향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희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왜 격물치지를 이야기 했을까? 주희에게 있어서 격물치지는 철저하게 스스로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취한 방법이었다. 주희는 그의 제자인 문진이 “사물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절실한 것입니까?”라고 묻자, “군신, 부자, 현제, 부부, 붕우 관계는 모두 사람들이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격물하고 궁리해야만 한다.”라고 답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그가 속한 관계들에 의해서 규정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본성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나를 둘러싼 관계들에 대해서 고민해 봄으로써 나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사물[物]에 나아가 그것들의 이(理)를 고민하지만, 이는 왕수인이 지적했듯이 사물 자체의 독립적인 이(理)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규정하는 것으로써의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므로 나의 본성과 사물의 이(理)가 일치하는 것[性卽理]으로 보아야 한다.



2016년 8월 8일 월요일

마음의 연못 Theory of Emotion Pond

이곳에서 제시할 마음의 연못 이론은 한눈에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정신적인 질환의 가장 극단에 놓인 사례들을 가정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연못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다 뚜렷하게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을 구성하는 감정이 이동하는 부분들이 다소 거친 느낌이 있더라도 마음이 이동하는 매우 보편적인 순서라는 점을 고려하면서 가상의 사례들을 대입해본다면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연못 이론은 개인의 내부에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관찰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부정적 감정의 전이를 경험했을 때 대처해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음의 연못에서는 부정적 정서가 관심필요, 분노, 죄책감, 두려움, 관심필요, 분노, 죄책감,.....의 발생 순서를 가지며 부정적인 정서들로부터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초자아가 항상 활성화 되어있는 상태이다.
대부분의 정신적인 질환의 발생 원인은 인간적인 관심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도움과 관심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관심을 받지 못한 인간은 분노를 경험하고 강력한 분노를 경험한 이후에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죄책감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두려움을 경험한다. 두려움의 감정은 자신이 얼마나 여리고 취약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주고 동시에 그를 붙잡아줄 타인의 존재와 관심을 또 다시 갈망하게 된다. 이러한 악의 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에 대한 애정 섞인 관심뿐이다.
초자아는 관심의 부재, 분노, 죄책감,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의 늪에서 우리를 빠져나오도록 통제하고 제어함으로써 우리의 정신건강을 보호한다.


마음의 연못 이론에서 연못을 물장구치게 만드는 것은 부정적 감정의 경험이 아니라 초자아의 통제다. 부정적 감정의 경험이 크면 클수록 초자아가 통제해야 하는 힘도 커지게 되고 그럴수록 마음의 연못은 더욱 크게 물장구친다. 네 가지의 부정적 감정 경험을(+)로 표현하고 초자아의 통제를 (-)로 표현한다면, (+)일수록 마음의 연못은 잠잠하고 (-)일수록 마음의 연못은 물장구친다.
마음의 연못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일차감정의 물장구(1-)를 이차감정(2+)이 잠잠히 만든다(1-)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분노를 경험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죄책감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 규칙은 초자아의 통제를 전혀 받지 못한 이차감정(2+)은 일차감정에서 초자아의 힘(1-)을 필요로 한다(2-).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분노의 발생을 조절해야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죄책감의 발생을 조절해야 한다.



Bottom-up vs. Top-down 처리과정

Bottom-up 처리과정과 Top-down 처리과정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세상에 대한 정신적 심상을 발생시키고 저장하는 두뇌의 인지신경회로이다. Bottom-up 처리과정과 Top-down 처리과정은 신경에너지의 가용량과 두뇌에 요구되는 상이한 사고과정에 따라서 활발히 상호작용한다. 서로 다른 두 처리 과정들은 뉴런의 발화위치와 처리과정의 기능에 따라서 각각 원시적 신경회로와 현대적 신경회로로 나뉜다. Bottom-up 처리과정은 원시적인 뇌 구조물인 중뇌의 영역에서 발생하여 가장 진화한 형태로 여겨지는 인간의 뇌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구조물인 신피질(neocortex) 방향으로 확산적으로 발화하는 신경회로이다. Top-down 처리과정은 반대로 현대적인 구조물인 신피질에서 피질하부(subcortex) 방향으로 발생하는 신경회로를 가리킨다.


다음은 두 처리과정이 갖는 기능적인 특징들을 요약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1) Bottom-up 처리과정: 원시적 신경회로, 피질하부에서 신피질로 향하는 신경회로
- 발화형태: 분산적이고 발산적인 뉴런의 발화
- 발화시간: 순간적이고 짧은 시간 동안 강한 강도로 발화, 낮은 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
- 발화조건: 신경에너지의 통제와 억제에 대해 자유로운 상태이며 환경자극에 대해 충동적이고 반사적으로 발화
- 사고과정: 창의적, 포괄적, 거시적인 사고과정
- 표현형태: 산만한 주의상태
- 낮은 신경에너지 소모

2) Top-down 처리과정: 현대적 신경회로, 신피질에서 피질하부로 향하는 신경회로
- 발화형태: 중앙밀집적이고 수렴적인 뉴런의 발화
- 발화시간: 낮은 강도의 발화에서 높은 강도의 발화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발생하고 장시간동안 발화가 지속
- 발화조건: 관심대상에 대한 의식적이고 분석적이고 신경에너지의 밀집
- 사고과정: 분석적, 집중적, 계획적인 사고과정
- 표현형태: 완전한 집중상태
- 높은 신경에너지 소모

주의력

주의력은 여러가지 특성들을 갖는다. 주의력은 수동적주의와 능동적주의로 나뉜다. 자발적으로 주의력을 이끌어내야하는 능동적주의와는 달리 수동적주의는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자극에 의해서 발생하는 주의를 말한다.


1) 수동적 주의
1. 반사적: 예를 들어 우리 신체의 감각기관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자극에 대한 주의가 발생하게 된다. 반사적 특징은 환경자극에 대해서 피험자가 가지고 있는 민감도(환경자극이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상태)에 따라서 주의의 강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2) 능동적 주의
1. 유지성: 높은 수준의 주의 혹은 낮은 수준의 주의가 사용될 때 주의가 그러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성이다.
2. 분산적: 주의는 분산되기 쉽다. 주의력이 분산되기에 가장 취약한 순간은 현재의 높거나 낮은 수준의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는 작은 분산 요소에도 주의가 분산되기 쉽다. 특이 이 순간에 환경자극이 주어지면 반사적인 수동적주의의 속성에 따라서 순식간에 주의가 분산될 수 있다.
3. 분산추구: 주의력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상태에 놓여있을 때에는 주의가 집중되지 않는 분산 상태를 추구하는 경향성을 가진다. 이는 주의가 분산되어 있는 상태가 더 적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4. 비의도적: 능동적주의는 주의의 대상에 대해서 비의도적인 관심을 가졌을 때 더 잘 발생한다.
5. 주의의 파이프: 한번에 여러 가지 과제들을 수행해야 할 때 우리는 그 과제들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긴 원통형 파이프를 집어넣을 때 한번에 한 곳에만 끼울 수 있듯이 우리는 한번에 오직 한 과제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여러가지 과제를 수행할 때는 이러한 원통형 파이프를 서로 다른 과제에 빠르게 옮겨 끼울 수 밖에 없다.
6. 점진적: 능동적 주의력의 수준은 대개 점진적으로 증강 혹은 감소한다.
7. 단계적: 주의력은 단계적인 강도를 갖는다. 주어진 환경자극이 요구하는 주의력의 양에 따라 높은 수준의 주의력과 낮은 수준의 주의력이 사용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주의력이 사용되는 지점에서는 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임으로써 자극에 대한 주의요구량을 충족시킨다.
8. 제한적: 사용할 수 있는 주의량에는 한계가 있다. 주어진 환경자극의 크기와 관계없이 높은 수준의 주의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주의력을 소비할 수 없다.
*수동적 주의의 단계적, 제한적인 속성은 Kahneman의 주의용량이론(1973)이 설명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